이름은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그 어떤 단어보다 나의 존재의 본질에 가까히 위치한다. 하나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수없는 부름과 답변에 의해 반복해서 그 이름이 ‘되어’가는 것에 가깝다. 그래서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아이 이름 짓기를 중요한 의식으로 여겼다. 허나 그것은 남성의 이름 뿐, 여성의 이름은 족보에 기록되지 않는, 태초부터 바깥에 있는 그런 이름들이었다. 그래서 잘 짓던, 못 짓던 상관이 없었고, 우리 주변에는 많은 숙자와 말자가 태어났다. 여성의 이름들은 어쩌면 차별의 흔적이 고스란히 퇴적되어있는 살아있는 화석일지 모른다.

＜이름생존자＞는 그런 한국 여성들의 이름을 재조명하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예술 프로젝트다. 1940-70년 사이에 태어난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름과 삶을 담았다. 인터뷰 전문과 전시(2019)의 기록들, 저자와의 대담, 그리고 이러한 차별적 이름경험을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2-30대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이 담겨있다.